정유재란 · 해전사
명량해전 날짜 1597년 10월 26일, 울돌목·벽파진 해전과의 차이
명량해전은 1597년 음력 9월 16일, 양력 10월 26일 울돌목 일대에서 이순신이 이끈 조선 수군이 일본 수군을 물리친 전투입니다. 벽파진 교전과는 날짜와 전장이 다릅니다.
어려운 상황에서 수군을 다시 모으다
칠천량 패전 뒤 재기용된 이순신은 흩어진 병력과 전선을 수습했습니다. 우리역사넷은 전선 인수, 어란포와 벽파진으로의 이동, 정찰과 경계의 과정을 설명합니다. 명량의 승리를 한순간의 기지로만 보기보다 전투 이전의 재건과 준비를 함께 살펴봐야 합니다.
벽파진에서 우수영으로 이동한 이유
결전 직전 이순신은 명량해협을 등지고 싸우는 상황을 피하고자 함대를 우수영 쪽으로 옮겼습니다. 벽파진은 전투 전 주둔 거점이고, 명량은 좁은 해협의 지형과 조류를 고려해야 하는 전장이었습니다. 장소의 차이를 알면 벽파진 해전과 명량해전을 같은 사건으로 혼동하지 않게 됩니다.
양력과 음력 날짜를 함께 적는 이유
한국사 자료의 1597년 9월 16일은 당시의 음력 날짜입니다. 병무청 자료는 양력 10월 26일의 명량해전을 설명합니다. 역사 속 날짜를 현재의 양력 달력에 연결할 때에는 어느 역법의 날짜인지 먼저 밝혀야 합니다. 매년 음력 9월 16일이 양력 10월 26일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자주 묻는 질문
명량해전은 양력으로 언제인가요?
1597년 10월 26일이며 당시 음력으로는 9월 16일입니다.
벽파진 해전도 명량해전인가요?
아닙니다. 벽파진 교전은 명량해전보다 앞선 음력 9월 7일의 기록입니다.